러닝을 처음 보는 사람 입장에서 1km는 별로 긴 거리가 아니다. 걸어서도 갈 수 있고, 차를 타면 정말 금방이다. 그래서 달리기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러닝에서 1km라는 숫자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처음 달리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일단 1km만 뛰어보세요"라는 말은 생각보다 꽤 부담스러운 말일 수 있다. 몇백 미터까지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숨이 차고, 종아리는 묵직해지고, 조금 전까지 별것 아닌 것 같았던 1km가 이상하게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나도 하프마라톤까지 뛰어봤고, 한때는 한 달 러닝 거리가 200km 안팎까지 올라갈 정도로 달리기를 이어왔다. 첫 하프에서는 21.06km를 2시간 14분 정도에 달렸다. 그런데 오히려 계속 달려보니까 초보자에게 중요한 건 처음부터 몇 km를 쉬지 않고 뛰느냐가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러닝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1km 기록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거리부터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러닝을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숫자가 거리다.
3km 뛰었다, 5km 뛰었다, 오늘 10km 채웠다. 러닝 앱이나 SNS를 봐도 대부분 거리가 가장 눈에 띈다. 그러니 이제 막 시작한 사람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3km 정도는 뛰어야 운동한 것 아닌가?"
그런데 초보자에게 이 기준을 바로 적용하면 러닝이 생각보다 힘든 운동이 된다.
특히 평소 걷기는 많이 하더라도 달리기를 거의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걷기와 달리기는 같은 두 다리를 사용하는 운동이지만 몸이 받아들이는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숨도 빨리 차고 심박수도 올라간다. 무엇보다 발이 지면에 반복해서 닿으면서 종아리와 허벅지, 발목 주변에도 계속 부담이 들어온다.
이때 마음은 조금 이상하다.
숨이 차기 시작하면 속도를 낮추면 되는데 괜히 멈추면 실패한 것 같다. 앞에서 다른 사람이 천천히 뛰어가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맞춰야 할 것 같고, 러닝 앱에서 페이스가 느려지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다시 속도를 올리게 된다.
지금 돌아보면 초보 러닝에서 가장 먼저 버려도 되는 생각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였던 것 같다.
걷지 않고 계속 뛰어야 제대로 러닝한 것이라는 생각.
자료를 찾아보니 처음부터 계속 뛸 필요가 없었다
이 부분이 궁금해서 초보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러닝 프로그램들을 찾아봤는데 꽤 재미있는 점이 있었다.
영국 NHS의 Couch to 5K 프로그램을 보면 완전한 러닝 초보자에게 첫날부터 3km나 5km를 뛰라고 하지 않는다.
첫 주에는 5분 정도 걷기로 몸을 풀고, 1분 달리기와 1분 30초 걷기를 번갈아 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이것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9주에 걸쳐 달리는 시간을 만들어간다.
더 눈에 들어왔던 건 주 3회 러닝 사이에 휴식일을 두도록 한다는 점이었다.
즉 초보 러닝 프로그램 자체가 처음부터 '얼마나 멀리 뛰었나'보다 '몸이 달리기에 적응할 시간을 얼마나 줬나'를 중요하게 보고 있는 셈이다.
이걸 보고 나니 1km를 쉬지 않고 못 뛰었다고 아쉬워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예를 들어 설명을 위해 30분 운동한다고 가정해보자.
3분을 천천히 뛰고 2분을 걷는 방식으로 여섯 번 반복해도 30분이다. 달린 거리만 놓고 보면 누군가의 5km 기록보다 훨씬 짧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막 러닝을 시작하는 사람의 몸에는 충분한 운동 자극이 될 수 있다.
특히 나는 러닝을 계속하면서 거리를 늘리는 것과 몸이 그 거리를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늘 억지로 5km를 채우는 것보다 내일이나 모레 다시 달릴 수 있는 상태로 끝내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중요할 수 있다.
1km가 힘들다고 체력이 형편없는 것은 아니었다
러닝 초보자가 가장 쉽게 오해할 만한 부분도 이거다.
조금 뛰었는데 숨이 차면 바로 "내 체력이 이렇게 안 좋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러닝 강도가 높아지면 숨이 차는 것 자체는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미국 CDC에서는 성인의 유산소 운동을 중강도와 고강도로 나눠 설명한다. 빠르게 걷는 정도의 중강도 운동에서는 대화는 가능하지만 노래를 부르기는 어려운 정도가 하나의 간단한 기준이고, 조깅이나 러닝처럼 강도가 높은 운동에서는 몇 마디를 하고 숨을 고르게 될 정도로 호흡이 빨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걸 알고 나니 초보자에게 중요한 질문은 조금 달라진다.
"왜 나는 1km도 못 뛰지?"보다 "내가 지금 너무 빠르게 뛰고 있는 건 아닐까?"를 먼저 생각해볼 수 있다.
초보 러닝을 보면 생각보다 처음부터 속도가 빠른 경우가 많다.
몸은 아직 달리기에 익숙하지 않은데 자신이 생각하는 '러닝다운 속도'에 맞추려고 한다. 그렇게 뛰면 당연히 금방 힘들어진다.
천천히 달리면 누가 볼까 조금 민망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떤 날은 빠르게 걷는 사람과 속도가 비슷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 정도부터 시작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러닝은 한 번 빨리 뛰는 것보다 여러 달 계속할 수 있는 운동이 되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나도 요즘은 존2 러닝을 많이 보게 된다
러닝을 계속하다 보면 처음과 관심사가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에는 몇 km를 뛰었는지, 1km를 몇 분에 뛰었는지가 눈에 들어온다. 조금 지나면 심박수도 보기 시작하고, 어느 정도 달리다 보면 오히려 '얼마나 천천히 달릴 수 있느냐'에도 관심이 생긴다.
나 역시 요즘은 존2 러닝을 많이 하려고 생각하는 편이다.
존2라는 말이 처음에는 굉장히 전문적으로 들리는데 쉽게 생각하면 숨이 턱까지 차는 강도로 계속 뛰기보다는 비교적 편안한 강도로 오래 움직이는 훈련에 가깝다고 이해하면 편하다.
물론 개인의 정확한 심박 존은 최대심박수나 측정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서 단순한 숫자 하나로 모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초보자라면 처음부터 스마트워치 숫자에 집착하기보다 호흡과 몸의 느낌을 같이 보는 편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부분이 꽤 재미있었다.
러닝을 잘하려면 계속 빠르게 뛰어야 할 것 같았는데, 막상 오래 달리는 쪽으로 관심이 생기니까 느리게 뛰는 시간이 꽤 중요하게 느껴졌다.
하프마라톤이나 그보다 긴 거리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나 역시 하프를 몇 차례 더 경험한 뒤 풀코스까지 도전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풀코스에서는 기록을 노리는 것보다 우선 완주하는 것이 첫 목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하루의 빠른 기록보다 꾸준히 훈련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쪽에 더 눈이 간다.
러닝 건강을 생각하면 근력운동도 빼기 어렵다
예전에는 러닝을 많이 하려면 그냥 많이 뛰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하면서 러닝을 하다 보니 달리기만 보는 것도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CDC의 성인 신체활동 권장 기준을 보면 일주일에 중강도 유산소 운동 150분 또는 고강도 유산소 운동 75분 정도와 함께 주요 근육을 사용하는 근력운동을 주 2일 이상 권장한다.
러닝만 놓고 보면 "그냥 뛰면 되는 것 아닌가?" 싶지만 몸 전체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나 역시 체중을 줄이더라도 단순히 숫자만 낮추는 것보다 지방을 줄이고 근력은 가능하면 늘리거나 최소한 유지하고 싶은 쪽이다.
러닝 기록만 좋아지고 몸이 계속 지쳐 있는 상태는 내가 원하는 방향과 조금 다르다.
특히 하프나 풀코스처럼 장거리 러닝을 생각하면 운동을 얼마나 했는지만큼 회복이 되고 있는지도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초보자 시절부터 러닝을 '오늘 몇 km 뛰었나' 하나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잘 먹고, 쉬고, 필요한 근력운동도 하고, 다시 달릴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까지 러닝의 일부라고 보는 편이 더 오래 가기 좋지 않을까.
그래서 초보자에게 1km는 기록보다 기준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 러닝을 시작했는데 1km를 뛰기도 힘들다면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을 것 같다.
500m를 뛰고 걸어도 된다. 3분 뛰고 2분 걸어도 된다. 아니면 오늘은 빠르게 걷는 시간을 더 길게 가져가도 된다.
중요한 건 한 번의 러닝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달리기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러닝을 계속할수록 오히려 더 중요하게 느끼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거리가 늘어나는 것이 발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거리가 늘어나는 것도 분명 발전이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변화도 보게 된다.
같은 속도인데 숨이 조금 덜 찬다. 예전에는 중간에 멈췄던 코스를 조금 편하게 간다. 러닝 다음 날 다리가 전보다 덜 무겁다. 빠르게 달리고 싶은 날에도 일부러 속도를 낮출 수 있다.
이런 것들도 전부 러닝이 늘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친구가 나에게 "1km도 못 뛰는데 러닝을 계속해도 될까?"라고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다.
지금 1km를 얼마나 빨리 뛰느냐보다 다음 주에도 운동화를 신고 나갈 수 있느냐를 먼저 봐도 된다고.
나도 러닝을 오래 해보고 싶다.
하프를 더 뛰어보고 언젠가는 풀코스도 완주해보고 싶다. 그래서 오히려 요즘은 한 번의 기록보다 오래 달릴 수 있는 습관과 몸을 만드는 쪽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러닝 초보자에게 1km가 길게 느껴진다면 어쩌면 그게 당연한 시작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1km가 힘들었다면 다음 목표는 굳이 2km일 필요도 없다.
다음번 1km가 오늘보다 조금 덜 힘들게 느껴지는 것.
나는 그것부터 충분히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참고한 자료
NHS Better Health - Couch to 5K running plan
https://www.nhs.uk/better-health/get-active/get-running-with-couch-to-5k/couch-to-5k-running-plan/
CDC - Adult Activity: An Overview
https://www.cdc.gov/physical-activity-basics/guidelines/adult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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